샌드아트디렉터 최은영
 
 
 
 
 
 
 
 
 
 
작성일 : 14-09-04 14:16
아시아경제 [위안부 보고서 55] 문화운동으로 번진 '위안부의 눈물'…"소녀를 잊지말아요" 샌드아트 작가 최은영
 글쓴이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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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55]18. 문화운동으로 번진 '위안부의 눈물'…"소녀를 잊지말아요"

최종수정 2014.09.04 11:10기사입력 2014.09.04 11:10


 도시락밴드 등 노래 내고 수익금 기부
최은영 작가는 샌드아트로 피해 실태 알려
고려大 블루밍 프로젝트-대구시민모임, 수익사업 연계 '희움' 론칭…의식 발찌 등 판매


 
2014, 소녀 노래하다.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젊은 세대들이 위안부 문제를 너무 몰라서인지 잊혀져 가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이들에게 친숙하게 위안부 문제를 알릴 방법은 음악 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무슨 노래지? 노래 좋은데? 이게 위안부 문제를 노래한 거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구호'가 아닌 '노래'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도시락밴드(이제이ㆍ정영주ㆍ윤민제)'는 기존과는 다른,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법인 음악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주로 여성가족부와 외교부 등 정부차원의 활동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시민단체의 활동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정부차원의 노력은 대내외 정세에 휘둘리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시민단체들도 힘들여 활동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울림이 메아리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음악과 그림, 그리고 수익사업 등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위안부 운동이 인권운동을 넘어 문화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서초구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제이 프로듀서는 "음악은 언어가 달라도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잖아요"라며 "이 문제를 노래로 만들어 놓으면 영원히 우리 곁에서 숨쉬는 거죠. 그래서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들이 위안부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건 밴드 이름을 딴 '도시락 폭탄 콘서트'를 기획하면서부터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3ㆍ1절에 들려주자는 취지였다. 이 무렵 도시락밴드의 홍일점인 보컬 정영주도 영입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소녀와 꽃'의 작사와 작곡을 맡은 이 프로듀서는 우선 할머니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탄생한 부분이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나를 잊지 말아요'다. 이 곡의 전체적인 콘셉트는 '봄'으로 정했다. 추운 겨울의 아픔을 봄으로 녹이자는 취지에서다.

"물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는 것이 할머니들이 가장 바라시는 것이겠지만 저는 '이 역사를 잊지 말라. 내 자식들아, 후손들아 절대 이 역사를 잊지마라. 언제나 이 역사를 기억해서 이것을 되풀이하지 마라'라는 것이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곡은 할머니들에게 헌정됐다. 헌정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원과 관련 수익 등 일체의 권리를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 양도키로 멤버들과 뜻을 모았다. 지난 3월1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도시락 폭탄 콘서트를 열고 이날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할머니들을 초대해 소녀와 꽃 헌정식을 했다.

보컬 정영주는 "저희가 마음으로 노래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명예나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후세에게 작은 불씨라도 될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고 헌정 이유를 설명했다.

도시락 밴드는 소녀와 꽃을 더 알리기 위해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생각했다. '향수'를 부른 서울대 명예교수인 박인수 테너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조심스러운 재능기부 요청에 박 테너가 단번에 승낙을 하면서 첫 번째 컬래버레이션 앨범이 탄생했다. 박 테너는 "소녀와 꽃은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곡으로 이 곡에서 꽃은 희망을 상징한다"고 설명하며 곡의 일부분을 부르기 시작했다.


 
1일 서울 서초구의 박인수 테너의 연습실에서 도시락밴드와 박인수 테너가 '소녀와 꽃'을 부르고 있다. 최우창 기자 smicer@

"꿈 많았던 어린 소녀는 가시밭 길 지나 먼 곳으로. 꽃이 피고 지듯 한 줌의 봄 꽃이 되어 기억되리니. 꽃피리라. 날 잊지 말아요. 날 잊지 말아요. 계절이 바뀌고 꽃이 진다 하여도 날 잊지 말아요."

소녀와 꽃의 다음 컬래버레이션에는 얼마 전 독일에서 귀국해 올해 말까지 머물 예정인 서경희 소프라노가 참여한다. 이달 중 편곡 작업과 녹음을 진행해 내달 중에 공개할 예정이다.

음악으로 위안부 알리기에 나서는 뮤지션은 도시락 밴드만이 아니다. '소규모아카시아 밴드'의 멤버 송은지는 2012년 8월 '3호선버터플라이' 보컬 남상아와 오지은, 시와 등 서울 홍대 음악거리에서 활동 중인 여성음악인들과 함께 앨범 '이야기해주세요'를 만들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효리(날 잊지 말아요), 클래지콰이 호란(첫 마디) 등의 인기 가수들이 참여한 두 번째 앨범 '이야기해주세요-두 번째 노래들'을 냈다.

이야기해주세요는 동명의 드라마콘서트와 함께 진행됐다. 음악하는 사람은 편집음반(컴플레이션 앨범)을 내고, 사진작가는 사진전을, 애니메이터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에 국내 샌드아트 1세대인 최은영 작가도 참여했다. 나비효과인 셈이다. 최 작가는 가수 지현의 노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의 뮤직비디오를 빛과 모래로 표현했다.


 
최은영 작가의 샌드아트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부디 기억해다오' 中.(그림제공=최은영 작가)
최 작가는 "작품을 만들기 전에 관련 대상에 대해 공부를 하는데 생전 인터뷰 등 자료를 찾아 보다가 정말 많이 울었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심한 경우가 많았고 해결이 되지 않은 채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는걸 보면서 더 안타까워 참여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은 최 작가는 이번에는 동료 샌드아트 작가들에게 재능기부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못다한 이야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대부분 그에게 샌드아트를 배운 제자들이다. 최 작가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서 샌드아트가 갖는 특별한 힘을 '다양한 계층의 공감'이라고 봤다.

"그림 형식이라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샌드아트 작품을 통해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을 보고 일단 다들 마음이 아팠으면 좋겠어요. 제가 느낀 아픔을 공감하길 바라요."

그는 이 작품들을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기금마련 행사나 학교와 관공서 등의 교육자료로 무상 제공하고 있다. 그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더니 영상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었다"며 "이렇게 활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예 비정부기구(NGO) 단체들의 안정적인 재정기반 마련을 위한 수익 사업을 연계하는 곳도 있다. 고려대학교 블루밍 프로젝트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대구시민모임)'과 함께 2012년 2월 '희움'을 론칭했다. 블루밍 프로젝트는 국제 동아리인 인액터스(ENACTUS)의 한 프로그램이다.


 
1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서 만난 블루밍 프로젝트의 호가주 매니저(왼쪽부터)와 임정희ㆍ이지선 팀장, 안은하씨가 희움의 필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우창 기자 smicer@

비정부기구의 자립을 돕는 이 프로젝트의 최우선 목표는 대구시민모임의 안정적인 수익 확보다. 호가주(일어일문ㆍ4학년) 블루밍 프로젝트 매니저는 "그동안 대구시민모임 운영비가 기부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충당되다보니 재정이 불안하고 위안부 운동에도 제약이 있었다"며 "재정 안정화 방법으로 수익사업을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희움에서 가장 먼저 판매를 시작한 것은 '의식팔찌'다. 고무밴드로 만들어진 팔찌에는 'Blooming their hopes with you'라는 문구를 넣었다. '그들(할머니들)의 희망을 당신과 함께 꽃 피우리'란 뜻이다.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동참을 유도하려는 의도다. 이지선(경영학ㆍ4학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팀장은 "원래는 대구 분들이 팔찌에 들어갈 문구를 '할머니들에 명예와 인권을'이라 넣자고 했었다. 하지만 강한 어투는 거부감을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완곡하게 돌려서 표현했다"며 문구 선정 취지를 설명했다.

희움은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을 이용한 팔찌와 필통, 손가방 등도 판매하고 있다. 판매 수익금은 위안부 운동과 대구에 지어질 '위안부'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회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과 시민단체이다보니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운영상의 어려움보다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이 팀장은 "희움에 대해 설명하면 처음에는 '너 페미니스트냐?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 사람들도 우리 제품을 전국 곳곳에서 보면서 위안부 문제를 거부감 없이 접하는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희움은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을 반드시 활용하고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제품을 판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호 매니저는 "처음에는 '압화 작품을 활용하면 예쁘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점차 이런 것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이고 이런 아이덴티티가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거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위안부 보고서 55' 온라인 스토리뷰 보러가기: 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